달러 기반 스테이블코인이 비 기축통화국 통화를 절하시키는 이유

달러 스테이블코인이 확대되면서 비 기축통화국 통화 가치와 중앙은행의 통화 주권이 약해지는 모습을 표현한 이미지

자국 통화의 가치가 흔들릴 때 은행을 거치지 않고 스마트폰 지갑에서 달러 기반 스테이블코인을 살 수 있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요. 달러 기반 스테이블코인의 대중화는 비 기축통화국에서 자국 통화 수요를 줄이고 자본 통제를 우회하는 통로를 넓혀 통화 가치 절하와 통화 주권 약화를 유발합니다.

달러 스테이블코인이 확대되면서 비 기축통화국 통화 가치와 중앙은행의 통화 주권이 약해지는 모습을 표현한 이미지

영향은 국가의 외환보유액, 금융시장 규모, 자본 통제 수준에 따라 달라집니다. 취약 신흥국에서는 스테이블코인이 가치 저장과 결제 수단을 직접 대체하고, 한국과 같은 비 기축통화국에서는 금융 충격이 발생했을 때 자본 도피 속도와 환율 변동성을 키우는 경로로 작동합니다.

목차

BIS 연구에서 확인된 외환시장 충격

스테이블코인을 통한 달러 매수는 가상자산 시장 내부의 거래로 끝나지 않습니다. 달러 기반 스테이블코인을 자국 통화로 사는 행위 자체가 사실상 외환 거래이기 때문에 전통 외환시장과 달러 조달시장까지 영향을 받습니다.

2026년 3월 27일 발표된 BIS Working Paper No. 1340은 2021년부터 2025년까지 64개 거래소에서 거래된 4개 주요 달러 스테이블코인과 27개 법정통화 데이터를 분석했습니다. 연구진은 법정통화에서 스테이블코인으로 전환되는 거래의 70% 이상이 미국 달러 이외의 통화에서 발생했다고 밝혔습니다.

분석 항목확인된 영향비 기축통화국에 미치는 결과
가격 괴리순유입 1% 증가 시 약 40bp 확대온체인 달러 매수 비용과 현물환 가격의 차이 확대
현물환율자국 통화 가치 하락달러 수요가 기존 외환시장으로 전이
달러 조달커버드 금리평형 괴리 확대외환 스왑을 통한 달러 조달 비용 상승
시장 중개중개기관의 자본이 부족할수록 충격 확대신흥국 통화가 더 큰 압력에 노출

여기서 40bp는 스테이블코인 유입액 자체가 0.40% 늘었다는 뜻이 아닙니다. 다른 조건에서 발생한 스테이블코인 순유입이 1% 증가했을 때 스테이블코인과 전통 외환시장의 가격 괴리가 약 0.40%포인트 확대됐다는 연구 결과입니다.

연구의 반사실적 모형에서는 스테이블코인 시장과 전통 외환시장 사이의 마찰을 절반으로 낮추면 커버드 금리평형 파급 효과가 약 절반 감소하고 환율 영향은 약 3분의 1 줄어드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두 시장을 연결하는 중개기관의 자본 여력이 부족할수록 같은 규모의 스테이블코인 수요가 더 큰 환율 충격으로 전달된다는 의미입니다.

통화 가치가 하락하는 4가지 경로

디지털 달러화로 자국 통화 수요가 감소합니다

전체 스테이블코인 시가총액의 98% 이상이 미국 달러에 연동된 구조에서는 스테이블코인의 확산이 사실상 디지털 달러화로 이어집니다. 과거에는 달러 예금 계좌 개설, 현찰 보관, 해외 송금 과정에 비용과 규제 장벽이 있었지만 스테이블코인은 보관과 이체 비용을 크게 낮춥니다.

인플레이션이나 재정 불안이 발생하면 경제 주체는 거래 및 가치 저장 목적으로 보유하던 자국 통화를 달러 스테이블코인으로 빠르게 전환할 수 있습니다. 로컬 통화의 거래적·예비적 수요 함수가 약해지면서 환율 절하 압력이 커지고, 불안이 다시 달러 수요를 부르는 순환 구조가 형성됩니다.

국내 은행의 예금과 신용 창조 기반이 줄어듭니다

자국 통화 예금이 스테이블코인으로 빠져나가면 국내 상업은행의 수신 기반이 약해집니다. 은행이 대출과 투자를 통해 신용을 공급할 수 있는 여력이 줄어들면서 국내 통화승수도 수축합니다.

통화승수 m = 1 + c ÷ r + c

여기서 c는 현금통화비율, r은 지급준비율을 의미합니다. 스테이블코인 전환은 국내 은행 예금이 자국 통화권 밖으로 이동하는 효과를 만들기 때문에 국내 금융기관의 신용 창조 능력을 낮추는 방향으로 작용합니다.

반대편에서는 스테이블코인 발행사가 준비자산으로 미국 단기 국채나 역레포 자산을 매입합니다. 비 기축통화국의 예금과 유동성이 빠져나가 미국 국채시장으로 흡수되는 자본 역류가 발생하는 구조입니다.

화폐주조차익이 미국과 발행사로 이동합니다

중앙은행은 본원통화를 발행하고 국채와 같은 수익 자산을 보유해 화폐주조차익을 얻습니다. 자국 통화가 결제와 가치 저장 수단의 지위를 잃으면 중앙은행이 얻을 수 있는 발행 이익도 감소합니다.

달러 스테이블코인의 준비자산에서 발생하는 이자는 스테이블코인 발행사에 귀속되고, 준비자산 수요는 미국 재무부의 국채 조달 기반을 넓힙니다. 비 기축통화국 중앙은행의 재무적 완충 능력은 약해지는 반면 미국 달러 체계와 민간 발행사의 수익 기반은 강화됩니다.

자본 통제와 독립적인 금리 정책이 무력화됩니다

개방 경제에서는 자본 자유화, 독립적 통화정책, 고정환율을 동시에 달성할 수 없습니다. 비 기축통화국은 위기 상황에서 자본 이동을 제한해 환율과 금리를 방어하지만 P2P 거래와 개인 지갑을 통한 스테이블코인 이동은 기존 금융기관 중심의 통제망을 우회합니다.

중앙은행이 경기 부양을 위해 기준금리를 낮추더라도 온체인 달러 자산의 수익률이 더 높다면 자금은 자국 통화에서 달러 스테이블코인으로 이동합니다. 기준금리를 국내 경기만 보고 결정하기 어려워지면서 통화정책 독립성이 약화됩니다.

국가 유형에 따라 충격이 달라지는 이유

구분취약 신흥국·자본통제국한국 등 비 기축통화국
주요 전이 경로가치 저장과 결제 수단의 직접 대체금융 충격 시 자본 도피 통로 확대
환율 영향이중 환율 고착과 초인플레이션 가속원·달러 환율 변동성과 꼬리위험 증가
통화 방어외환보유액 소진 시 방어력 급감외환시장 미세조정 효과 감소
구조적 위험법정통화 체제 붕괴 위험통화정책 독립성 훼손과 절하 압력

볼리비아, 나이지리아, 아르헨티나처럼 외환 통제가 강한 국가에서는 USDT와 같은 스테이블코인의 개인 간 거래 가격이 실질적인 기준환율 역할을 맡게 됩니다. 중앙은행이 발표한 공식 환율보다 스테이블코인 시장 가격이 실제 거래 판단에 더 많이 사용되면 법정통화의 가격 책정 기능이 무너지고 이중 환율이 고착됩니다.

한국과 같은 중진국은 자국 통화가 즉시 사라지는 형태보다 금융 불안기에 달러 전환 속도가 빨라지는 형태로 충격을 받습니다. 기존에는 은행의 환전 절차와 송금 규제가 자본 이동의 속도를 늦췄지만 온체인 거래가 보편화되면 외환당국이 대응할 수 있는 시간이 짧아집니다.

통화 주권이 약해진다는 의미

통화 주권 상실은 자국 지폐가 완전히 사라지는 상황만을 뜻하지 않습니다. 국민과 기업이 저축, 결제, 가격 표시의 기준을 달러 스테이블코인으로 옮기면 자국 통화는 세금 납부와 일부 국내 거래에만 필요한 지역 화폐로 격하됩니다.

달러 기반 스테이블코인의 네트워크 효과가 강해질수록 비 기축통화국 통화에는 구조적인 위험 프리미엄이 붙습니다. 위기가 발생할 때마다 자국 통화에서 온체인 달러로 이동하는 경로가 반복되면 환율 절하는 일시적인 충격이 아니라 장기적인 추세로 고착됩니다.

따라서 달러 기반 스테이블코인의 확산은 결제 기술의 변화에 머물지 않습니다. 자국 통화 수요 감소, 은행 예금 이탈, 화폐주조차익 이전, 자본 통제 약화가 동시에 진행되면서 비 기축통화국의 환율 방어력과 통화정책 독립성을 구조적으로 훼손합니다.

FAQ

Q. 달러 스테이블코인이 늘어나면 모든 국가의 통화가 같은 폭으로 하락하나요?

A. 국가별 외환보유액, 금융시장 규모, 자본 통제 수준이 다르기 때문에 충격의 크기도 다릅니다. 취약 신흥국은 통화 대체가 직접 진행되고 한국과 같은 국가는 위기 상황의 자본 유출 속도와 환율 변동성이 커지는 형태로 나타납니다.

Q. BIS 연구의 40bp는 환율이 바로 0.40% 하락한다는 뜻인가요?

A. 아닙니다. 스테이블코인 순유입이 1% 증가했을 때 스테이블코인과 전통 외환시장의 가격 괰리가 약 40bp 확대됐다는 추정치이며, 환율 하락률 자체를 의미하지 않습니다.

Q. 스테이블코인은 왜 기존 자본 통제보다 빠르게 이동하나요?

A. 개인 지갑과 P2P 거래를 이용하면 전통 은행의 환전 및 해외 송금 절차를 거치지 않고 자국 통화를 온체인 달러 자산으로 전환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Q. 통화 주권 상실은 자국 화폐가 폐지된다는 뜻인가요?

A. 화폐 폐지만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저축과 결제, 가격 표시 기능이 달러 스테이블코인으로 이동해 중앙은행의 금리 결정과 통화 발행 효과가 약해지는 상황까지 포함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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